인문학 배제된 교육, 청산되지 않은 식민 잔재

1945년 9월 12일, 일본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는 한국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일본이 패배했다고 해서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조선이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도 더 걸릴 것이다. 우리가 심어놓은 식민교육 때문이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며 대한제국은 일본의 영향 아래 들어갔다. 그 후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인해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비극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가 그렇게 쓰여졌고,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과 함께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날로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1945년 9월 12일, 일본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는 한국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일본이 패배했다고 해서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조선이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도 더 걸릴 것이다. 우리가 심어놓은 식민교육 때문이다." 이 말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었다. 일본이 식민지 시절 한국에 이식한 교육은 바로 우민화 교육, 즉 인문학이 배제된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식민교육의 유산: 인문학의 배제와 비판적 사고의 억제

우민화 교육은 일본이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한국에 도입한 교육 방식으로, 단순한 지식 전달과 복종을 강조하는 시스템이었다. 일본은 한국을 노동력과 자원 제공지로 활용하려 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도록 교육 체계를 설계했다. 구체적으로, 일본은 인문학적 사고와 자유로운 토론을 억제하고, 암기와 기술적 숙련에만 집중하는 교육 방식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정부에 순응하고, 사회의 하위 계층으로 머물도록 유도되었다.

경성제국대학(현재의 서울대학교)은 이러한 식민지 교육의 상징적 기관이었다. 해방 후 미군정은 경성제국대학을 서울대학교로 재편했지만, 일제 식민 교육 체제의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일본이 주입한 공립학교 중심의 교육 모델은 프러시아식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본떴다. 이 모델은 산업화 시대에 맞춘 것으로, 공장 노동자와 군인을 양성하기 위한 직업 중심의 교육이었다. 이에 반해, 미국의 인문학 중심의 사립학교 교육이 아닌 단순한 기술 교육이 한국에 뿌리내린 것이다.

해방 후 미군정의 교육 정책과 그 영향

해방 직후 미군정은 일본의 식민 잔재를 청산하는 대신, 오히려 일본과 협력했던 관료들과 교육자들을 그대로 유지했다. 예를 들어, 조선총독부에서 일했던 많은 관료와 교사들이 미군정 하에서도 계속해서 고위직을 차지했다. 특히 교육부문에서 일본의 식민지 시절 교육 체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해 여러 교육기관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식민지적 교육 구조와 내용은 그대로 이어졌다. 미군정이 세운 조선교육위원회는 미국식 교육을 도입한다고 했지만, 그 실상은 공립학교 중심의 기술 교육에 불과했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자유로운 사유와 인문학적 성찰을 위한 교육이 부족한 상태로 남게 되었다. 예를 들어, 현대 한국의 초중고 교육에서는 비판적 사고창의적 문제 해결보다는 암기기계적 문제 풀이가 주를 이룬다.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학생들은 수능과 같은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지식만을 주입받고, 인문학적 깊이나 창의적 성찰의 기회는 제공되지 않는다.

현대 한국 교육의 문제: 우민화 교육의 잔재

오늘날 한국의 교육 현실은 우민화 교육의 성공적 결과로 평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학 입시제도는 죽은 지식을 강제적으로 주입하고, 맹목적인 암기와 문제풀이에 초점을 맞춘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인문학적 대화나 자유로운 사유보다는 성적 경쟁에 매몰된다. 학부모들은 학원에서 시험 대비에만 몰두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비판적 사고보다는 점수를 기준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또한, 학교에서는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인문학적 대화위대한 사상가들의 깨달음을 배우기 어렵다. 학생들은 시험 점수만을 위해 공부하며, 영혼이 병들고 마음이 파괴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직면하는 불행감소극성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현실은 한 예로, 대학생들의 높은 우울증과 취업 불안감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경쟁에 지쳐가며, 더 이상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여력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결론: 미래 교육의 방향

결국, 아베 노부유키가 떠나면서 남긴 경고는 부분적으로 현실이 되었다. 일본의 우민화 교육과 미군정의 기술 교육 중심 정책이 결합해, 한국은 자유로운 사유와 인문학적 성찰을 키우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했다. 한국 교육은 이러한 식민 잔재를 청산하고, 인문학적 사고와 창의적 문제 해결을 중점으로 한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지식 전달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자유로운 사유를 키우는 인문학 교육이 다시 한국 교육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