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뮈스 《우신예찬》: 인간은 덜 현명할수록 더 행복하다

민중이라는 어리석은 짐승을 위한 우화

1. 책의 배경과 집필 의도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Laus Stultitiae)은 1511년에 발표된 풍자적 저작으로, 원래는 친구이자 동료인 영국의 토머스 모어(Thomas More)에게 헌정된 작품입니다. 에라스무스는 이 작품을 모어의 별장에서 집필하였으며, 당시 종교와 학문, 사회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풍자하고자 했습니다. ‘우신(Stultitia)’이라는 어리석음의 신이 등장하여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찬양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당시 중세 유럽의 교회와 학문, 그리고 사회 전반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책에서 현자(지혜자)의 위선과 어리석음, 특히 성직자와 학자들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이들이 추구하는 권위와 권력의 이면에 숨겨진 모순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단순히 풍자의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삶에서 어리석음이 필연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어리석음이야말로 인간의 행복과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웃음과 비판이 공존하며, 해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성찰이 돋보입니다.

2. 내용 및 구조

『우신예찬』의 구조는 크게 토머스 모어에게 보내는 서문, 우신의 자화자찬 형식의 본론, 그리고 맺음말로 구성됩니다. 내용적으로는 어리석음의 신이 세상의 모든 인간 활동을 찬양하고 풍자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우신은 자신이야말로 신들과 인간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존재라고 자랑하며, 인간들이 어리석음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고 역설합니다.

1) 토머스 모어에게 보내는 서문

에라스무스는 모어에게 보내는 서문에서 『우신예찬』의 저술 의도를 설명합니다. 그는 모어(More)라는 이름이 그리스어로 어리석음(Moria)을 의미한다는 것을 재치 있게 언급하며, 이 책을 ‘어리석음에 대한 찬양’의 형태로 꾸몄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책의 전개에 독특한 아이러니와 유머를 부여하며, 독자로 하여금 깊은 메시지를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게 만듭니다.

2) 우신의 자화자찬 형식의 본론

본론은 우신의 연설 형식으로, 에라스무스가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어리석음을 폭넓게 다룹니다. 특히, 그는 어리석음이야말로 인간 활동의 근본적인 원동력이며, 인간이 어리석음을 통해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연설 속에서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어떻게 각 분야에서 표현되는지, 그리고 그 어리석음이 인간 사회를 어떻게 유지시키고 있는지를 묘사합니다.

- 여러 가지 어리석음의 유형: 책의 도입부에서는 노인과 어린아이, 여성의 어리석음,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행복의 원천이자 삶을 유지시키는 힘으로 묘사됩니다.

- 정치와 사회 제도의 어리석음: 에라스무스는 어리석음이 군주들과 정치인들의 통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가와 제국이 유지되는 것도 결국 어리석음 덕분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비판은 당시 권력자들의 위선과 탐욕을 우아하게 비꼬는 동시에, 인간 사회의 복잡한 관계를 재치 있게 드러냅니다.

- 중세 교회와 성직자들의 어리석음: 에라스무스가 가장 강력하게 비판한 대상은 바로 중세 교회입니다. 그는 교황과 추기경들이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들이 진정한 신앙과는 동떨어진 허위라고 지적하며, 그들이 교회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신학적 변론을 동원하고, 성직자들이 부패한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현실을 폭로합니다.

- 기독교적 어리석음과 참된 신앙: 책 후반부로 갈수록 에라스무스는 참된 기독교적 신앙과 세속적 어리석음을 구분하며, 기독교 신앙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고 미친 행동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과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리석어 보이는 희생과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세상의 구원 사건임을 강조하며, 어리석음 속에 숨겨진 신앙의 깊은 진리를 역설합니다.

3) 맺음말: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신은 독자들에게 모든 것을 잊고 즐거운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라고 권유합니다. 그는 지나친 지혜와 지식이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솔로몬의 말을 인용하며, 어리석음이야말로 인간이 인생의 고단함을 잊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유일한 길이라고 역설합니다. 이는 결국 기독교적 겸손과 순수한 믿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3. 에라스무스의 세계관과 기독교적 인문주의

에라스무스는 기독교적 인문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로, 인간의 본성과 신앙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고자 했던 학자입니다. 그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약점을 인정하면서도, 신앙을 통한 내적 회복과 개혁의 가능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관용과 지성의 힘을 통한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믿음과 이성, 신앙과 인문학”의 조화를 추구하며, 당대 종교개혁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개혁을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4. 루터와의 결별: 개혁을 둘러싼 입장의 차이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급진적인 방법으로는 교회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개인의 내적 변화와 성찰, 그리고 교회의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했으나, 마틴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보다 단호하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개혁을 실행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에라스무스가 루터와 결별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에라스무스는 루터와의 논쟁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앙의 역할”을 놓고 격렬하게 대립했으며, 루터의 급진적인 개혁 방식이 사회적 혼란과 전쟁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실제로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 이후 유럽 전역에 일어난 수많은 전쟁과 학살을 목격하며, 자신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그의 신중하고 관용적인 성향과도 연결되며,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지속 가능한 개혁을 통해 인간의 영적 삶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5. 현대적 시사점: 어리석음과 지혜의 경계

『우신예찬』은 단순한 중세 교회 비판서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권위와 권력을 향한 경고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단순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임을 역설하며, 지나친 지혜와 지식이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 과도한 정보와 지식이 오히려 인간의 행복을 방해하고, 단순한 진리와 신앙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만드는 현실에도 시사점을 줍니다.

에라스무스의 세계관은 인간의 내적 성찰과 겸손한 신앙의 회복을 통해 진정한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는 현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도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진정한 지혜는 어리석음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에라스무스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